흙담 밑을 쪼옥 따라서 채송화가 피었다
죽순 토막들이 껍질째 뒹군다
물지게 진 안짱다리들이
싸리울 뚫고 나온 돼지새끼들에게
뒤뚱거리고, 돈 좀 달라고 띵깡 부렸간디
니미 팔아서 주끄나! 하는 소리 쩡쩡 울리고,
경숙이 누나 연애편지를 유님이 누나에게 줬다고
직사하게 욕 얻어먹었어도
아침이면 싸리비질 등살에 흙냄새가 새로웠다
명수 형이 누렁소 팔아먹고 무릎 굻고 용서 빌던 골목
발통기 피댓줄에 손목 바스라진 용남이 삼촌이
창백하게 들어서던 골목
젖은 짚 태우는 냄새 꽁보리밥 짓는 냄새
쇠죽 쑤는 냇내를 안쪽으로 끌어들이며 웃거티로
아랫거티로, 구판장으로, 앞시암으로,
덕호네 집 꼭대기로 탯줄같이 뻗어간 골목
똥개 한 마리가 짖으면 동네 똥개란 똥개가 다 깽깽거려서
발 디딜 틈이 없던, 그 통에 ‘전설 따라 삼천 리’
유기현 목소리가 팍 꺾이던
저 잡녀르 것덜 된장 발라버리자고 입똥내 튀던 골목
된장 발라버릴 것덜이 똥개덜 뿐이것냐고
누가 또 없는 비료값 물리능갑다고
애먼 골마리나 추어 쌓던 골목
함 사씨요! 악쓰고 떼쓰는 발밑에 흰 봉투가 깔리고
갈몰떡 땜시 사타구니에 가래톳 섰다는 형들이
우당탕퉁탕 지게작대기에 쫓기고,
꽃상여가 사람들을 줄래줄래 물고나오던 골목
주 씨네 감꽃들이 주울똥말똥 떨어진 골목
-<골목>전문-
이병초 시인이 첫 시집“밤비”이후 6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 “살구꽃 피고”를 상재했다. 이번에 펴낸 시집 “살구꽃 피고”는 따뜻하고도 화해로운 성격의 점증과 변형을 동시에 견지하면서, 사물이나 시간이 가지는 미추와 청탁을 가르지 않고 뭇 사물과 시간이 자신의 기억 속에서 동등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이병초 시학을 견고하고도 새롭게 구현하고 있다. 4부로 나누어져 총 51편의 신작시를 수록하고 있는 그의 시는 심미적 언어의 조탁 과정을 현저하게 피하면서, 그 대신 토속적 자연어 자체의 미감을 중시하고 있다.
추상어보다는 구체어, 문어文語보다는 구어, 표준어보다는 지역어를 지향하는 토속적 자연어의 집합체인 이번 시집에 대해 유성호 평론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신의 몸에 새겨진 기억을, 일관되게 구체성 있는 구어口語와 지역어를 통해 복원하면서, 그 ‘몸의 기억’을 시의 표면에 적극 물질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병초 시편들은 세계와 건실하게 밀착되어 있고, 고아古雅한 언어와 확연한 대극을 이루면서, 날것 그대로의 언어를 재현하고 있다. 이는 매우 자각적이며 의식적인 결과로서, 이번 시집을 구성해내는 작법作法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할 것이다.”
최대한 ‘구어’를 활용하여 미세한 ‘몸의 기억’을 되살려내는 이병초 시편들의 미덕은, 근대의 파시스트적 속도나 화려한 외관과는 상관없는, 오히려 그것들에 철저히 밀려난, 그래서 어쩌면 ‘몸의 기억’ 속에서 가장 선명한 형상을 얻고 있는 것들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그를 일러 “삶을 둘러싸고 있는 오욕과 질척질척한 비린내를 잘 버무릴 줄 아는 시인”(안도현)이라는 평가가 있어왔던 것이며 그의 시에 대해 “손끝으로 쓴 작위적인 시가 아니라 가슴에서 저절로 솟구치는 서글픈 정서”(오탁번)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몸속을 지나가는 가장 선명한 기억들을 통해 사라져가는 것들(“왼갖 허드렛것들”)을 아프고도 정답게 보듬는 그의 이번 시집은 요설과 해체 정신으로 미만彌滿한 우리 시단에서, 오히려 역설적 전위前衛로 솟구치는 매우 특색 있는 시집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가망 없는 세월을 견뎌낸 헛바람 내던 말씨, 밤마다 모로 돌아눕던 그 숨소리를 찾아서 나는 보다 치열하게 뒷심 짱짱한 세월을 가꾸고 싶다”는 ‘시인의 말’을 확인하는 즐거움을 만끽해본다
이병초 시인은 1963년 전주 출생으로, 1998년 '시안'으로 등단했으며 우석대 국문과와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수학했다. 시인의 시집으로는「밤비」가 있으며, '현재 웅지세무대학 교수 이다.
유성호 해설| 작가| 2009.02.01 | 1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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