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오늘 비가 무척 많이 내렸다. 세찬 빗줄기를 바라보며 시인 정현종 님의 ‘섬’이란 시(詩)가 생각났다. 아주 짧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두 행의 문장, 이것이 전부이다.
모두들 흉금을 터놓고 지내는 상황이라면 사람들 사이에 간격이 있을 까닭이 없다. 무엇인가 감추고 마음의 창을 닫으니 우리들 사이에 틈새가 있는 것이다. 버스로 달리다가 더 이상 차로 갈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배를 갈아타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섬이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 만들까? 우리들 스스로 태어날 때부터 마음의 벽이 있단 말인가? 오십년 남짓 살았지만 과거에 비해 지금의 삶이 더 ‘빡빡하다’는 느낌이 있다. 서로 양보하거나 용서할 마음이 없고 스스로 회계(回啓)할 마음은 더더구나 없어 보인다. 차분하게 일기를 쓰며 오늘 하루를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 사람은 아예 없어 보인다.
대중교통 속에서 만나는 젊은이들을 보면 단 둘이 있어도 대화를 하는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귀에 리시버를 꽂고 혼자 웃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낸다. 주변의 그 무엇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으며 내 행위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OK’처럼 보인다. 섣부른 판단일까? 대화, 비판, 토론이 결여된 그들의 세상이 과연 밝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마음속 간격, 섬의 근원은 그야말로 마음의 문제이다. 우리들 모두 잊고 사는 순수함, 그것이 원인 아닐까 싶다. 내가 양보하고 내가 용서하고 내가 먼저 사과하는 그런 마음, 감히 ‘내려놓음’의 마음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누구나 내 것을 내려놓아야 다른 사람이 나에게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을 주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조심스레 스며들 수 있다면 우리들 사이에 섬이란 없을 것이다. 마음과 몸의 간격을 두고 이곳도 저곳도 아닌 늘 ‘중간 지점’ 섬에 도달하기만 원한다면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없다. 매사 조금씩 양보하며 남을 배려하는 세상이 온다면 우리들 사이에 ‘섬’이 들어설 공간은 없을 것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디를 가도 또 다른 우리를 만날 수 있다’는 문장으로 시(詩)가 바뀌어 보기를 기원한다.
최영한 파주웅지세무대학 총장